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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성지순례

인도 네팔 16박 17일 성지 순례 3일차 -- 사르나트 성지(다메크 스투파, 영불탑), 갠지스강(강가강)

2018년 1월 7일 일요일

일정: 4시 30분 기상 -- 예불 30분 (수신기)-- 사르나트 초전법륜지 (7:00- 12:30) -- 갠지스강 -- 스님법문 (6:00- 8:45, 수라비 호텔) --

        10시 15분 취침



*** 사르나트 초전법륜지에서 수계식

겨우 앞 사람 얼굴만 인지할 정도로 안개가 두터운 새벽길을 석가모니불을 중얼거리며 걸었다.

황색 가사를 걸치고 손에는 연기나는 향을 든 채 400여명이 한 줄로 서서 사르나크 성지로 접어들었고 탑돌이를 시작하였다.

염불 소리만 웅웅거릴 뿐 안개때문에 사위가 어두워 나 혼자만 붕붕 떠다니는 느낌이었다.

오롯이 부처와 나만이 서로를 만나고 있는 듯 했다.

어둠 속에서 공양 예불을 올렸다.

긴 명상을 하고 눈을 떴을 때 어슴푸레하게 다메크 스투파의 모습이 보였다.

어둠을 깨치고 깨달음의 진리가 나타난 것처럼. 

이번 여행동안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기를 기대해보았다.

수계식은 처음 해 보는 것이었다.

잠시동안 출가 수행자로 살아간다는 다짐이란다.

14일간의 출가, 잘 할 수 있을까.




인도에 남아있는 모든 불교 유적지처럼 그 원형은 BC 3세기 아쇼카왕 시대의 건축물이다.

그후 불교 왕조인 쿠산 시대, 굽타 시대를 거치면서 개축, 증축을 하였다.

다메크 스투파 -- 붓다가 처음으로 초전법륜 (처음으로 법의 수레바퀴를 굴렸다)을 설한 곳을 기념하여 아쇼카왕이 탑을 세웠다.

깨달음을 얻은 붓다가 이전 수행 동료 다섯 명을 찾아와 법을 설하고 교화한 곳이 사르나트(녹야원)이다.

사슴이 뛰어다니던 곳이어서 녹야원이라 불렸다.  이곳은 불교 4대 성지중 하나이다.




아쇼카 석주.

석주 위에 있던 4사자상은 사르나트 고고학 미술관에 있다.


안개가 걷히자 날이 맑고 따뜻했다.

다메크 수투파 위로 초록색 새들이 날아다녔다.

새로 태어난 출가 수행자를 축복하는 것 같았다.







 아쇼카 나무

마야 부인이 붓다를 낳을 때 잡았다는 나무.


영불탑:

이전 함께 수행하던 다섯 수행자가 부처님을 보고 환영했다는 곳에 세워진 탑으로

아쇼카 왕이 세웠다.

위에 세워진 뽀족탑은 후에 이슬람 왕이 기존의 탑 위에 세운 것이다.

불교 탑 위에 이슬람 탑을 세웠다.


바라나시, 갠지스강:

2,500년전 부처님 시대에 가장 흥성한 도시중 하나였던 바라나시는 이제 인도 관광의 가장 중심적인 도시가 되었다.

인도하면 갠지스강을 떠올리니 말이다.

오랜 역사만큼 문학과 철학의 중심지였던 곳이다.

명옥 보살과 함께 자전거 릭샤에 올라탔다.

부딪힐 듯 다가오는 다른 릭샤들과 오토바이, 행인들, 소들 때문에 의자 옆 난간을 꼭 붙들었다. 

하지만 그 상황도 곧 익숙해지고, 높아진 시야덕분에 바라나시 도심의 모습이 한 눈에 들어와 상쾌한 기분이었다.

혼돈스러움 자체를 유유히 즐기며 이곳저곳 시선을 돌렸다.

무질서 속에 삶의 활기를 느꼈다. 

이곳에서도 보통의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었다.

릭샤가 고돌리아 사거리에 도착했다.

1인당 50루피, 둘이 탔으므로 100루피(1,700원)를 지불했다.

명옥 보살은 맨발에 슬피퍼만을 걸친 청년이 안되어 보였나보다.

자전거가 달리는 도중 청년에게 사탕을 건넸다.

청년은 무표정하게 사탕을 받아 입에 넣었다.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 명옥 보살은 팁으로 1달러를 주고 싶다고 했다.

내가 교통비로 100루피를 주고, 명옥 보살이 팁으로 1달러를 청년에게 주었다. 

지폐 두 장을 건네받은 청년은 무언가 불만스러워보였다.

그는 나를 보더니 1달러를 외쳤다.

명옥보살과 나를 번갈아 가리켰다. 

명옥보살이 1달러를 주었느니 너도 1달러를 더 달라고 요구하는 것 같았다.

청년의 만족스러운 미소를 기대했는데, 그의 태도가 무척 의아하게 느껴졌다.

이게 인도인가 싶었다.

나중에 법륜 스님께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걸인에게 계속 돈을 주었더니 37번째까지 계속 요구를 하더란다. 

문화가 이리 다른가.







일단 걸인들이 보이지 않아 숨통이 좀 트이는 기분이었다.

유적지에 도착하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버스문옆에 도열해 손을 내미는 걸인들이 고통스러웠다.

그들은 어린아이거나 아주 작은 아이를 안은 엄마이거나 어린 동생을 안은 조금 큰 아이들이었다.

작은 아이들이 그들의 구걸 소품처럼 느껴질 지경이었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끊임없이 웅얼대는 소리가 귓전에 딱지처럼 달라붙었다.

여기 바라나시 도심은 그들 대신 보통 사람들의 삶의 열기가 느껴졌다.

웃통벗고 소리치고 싸움을 말리는 사람들 모습이 친근하기까지 했다.








버스에서 내려 자전거 릭샤를 타고 20여분, 고돌리아 사거리에 내려 다샤수와메드 가트까지 걸었다.

정토회 사람들이 여기저기 보여 길을 헤맬 필요는 전혀 없었다.

다샤수와메드 가트는 갠지스 강에 있는 수십개 가트중 가장 중심이 되는 곳이다.

가트는 계단이라는 뜻인데, 강에 쉽게 접근을 하기 위해 강 옆 여기저기 설치한 계단들이다.


드디어 갠지스강이 나타났다.

인도에 다녀왔다하면 사람들이 꼭 가봤냐며 묻는 곳이다.

인도를 상징하는 곳이다.

갠지스 강은 바다처럼 넓었다.

강이 아니라 포근하고 잔잔한 바다 같았다.

모든 것을 품을 것 같았다.

이래서 갠지스강인가.







우리 일행들은 미리 예약해 둔 배들에 올라탔다.

끊임없이 이어진 가트를 따라 배가 이동했다.

풍경이 무척 아름다웠다.

이국에 왔다는 느낌이 무척 강하게 다가왔다.

가트를 오가는 사람들, 가트를 따라 늘어선 음식점들, 절들, 게스트 하우스들.

강가에서 목욕하는 사람들, 뿌자를 올리는 사람들, 장사하는 사람들, 빨래하는 사람들, 그리고 장작더미위에 노란색 수의를 입힌 주검을 태우는 검붉은 불빛들.

온갖 삶의 모습들이 가트를 따라 진열되었다.

이 모든 것이 갠지스 강을 따라 이루어졌다.

갠지스 강은 이 모든 것을 조용히 끌어안고 있었다.

그래서 갠지스 강이 어머니의 강이라 불리는가.








수신기를 통해 법륜 스님의 설명이 들려왔다.

최고의 열성적인 관광가이드이다.

법회에서도 유적지에서도 관광에서도 하나라도 더 알려주러 무던히도 애쓰시는 분이시다.